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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켜도 그만 ‘공무원 징계시효’



비리교사·뇌물 공무원·한수원 납품 비리자, 시효 지나 처벌 안 받아 ‘비리 면죄부’ 된 징계시효, 늘리거나 없애자는 법안 개정 발의 잇따라
등록 2013-06-18 14:56 수정 2020-05-03 04:27

안 들키면 그만이지만, 들켜도 그만이다. ‘시효’가 지났다면 말이다. 그러나 공무원이 징계받을 일을 저질러도 징계시효가 지나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수두룩한 탓에, 최근 국회에서 공무원 징계시효를 크게 늘리거나 아예 없애는 내용의 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시효가 너무 짧다는 지적에서 시작된 일이다.
흉물스런 콘도 만든 공무원도…
지난 1월28일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대학으로부터 학생을 모집하는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포항·경주의 고등학교 교사 7명을 기소하고, 41명은 경북도교육청에 징계하라고 통보했다. 이를 나누는 기준은 1천만원이었다.이 교사들은 포항대 홍보 교수들로부터 “학생 모집이 완료되면 1인당 20만원씩 사례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학생 장사’를 통해 적게는 180만원에서 4800만원까지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비리 교사 48명 가운데 28명은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시효(당시 3년)가 지나 교육청 징계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기소한 7명 가운데 3명도 징계시효가 끝났다. 이들이 공무원 결격 사유인 금고 이상 형을 받지 않는다면 파면·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는커녕, 감봉·견책 등 경징계조차 내릴 수 없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징계시효가 지난 교사들은 경고·주의 등행정 조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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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국립공원 들머리에 흉물스럽게 서 있는 ‘더 파인트리’ 콘도미니엄 건설 인허가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공무원 22명도 징계시효가 지나 훈계 조처를 받는 데 그쳤다. 북한산 일대는 자연녹지 지역이라 지상 5층(20m)을 넘는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데, 공무원들이 고도지구 완화기준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으면서 규정보다 3m가량 높게 지어지는 등 규정 위반 사실이 15건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지난해 감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4년 만에 밝혔지만, 지방공무원법상 징계시효(3년)는 이미 지난 뒤였다. 이 콘도는 인허가 특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분양이 어려워져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징계시효가 비리 공무원의 ‘면죄부’가 되고 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현행 국가·지방공무원법은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 금품·향응을 주고받거나 공금을 횡령·유용한 경우는 5년의 시효를 두고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징계할 수 없다. 안전행정부는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교체될 경우 (전임 시절의) 기존 정책이나 사업 추진에 대한 무분별한 징계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설명한다. 공무원에 대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징계권을 행사할지 여부를 조속히 확정해 공무원이 상당 기간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거다.

 

감사 주기 2~3년, 징계시효 3년

그러나 감사원 등의 감사 주기가 2~3년인 점을 고려하면, 징계시효가 짧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안전행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정부합동감사만 보더라도 비위 사실이 드러났는데 징계시효가 지나 그냥 넘어간 경우가 2008년 25.8%, 2009년 25.6%, 2010년 15.5%에 달했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낸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전지검은 2012년 말 대전시 공무원 4명이 2010년 9월 대전 아쿠아월드에 취업을 청탁한 사실을 적발해 대전시에 통보했다. 대전시는 지난 1월 이를 확인하고도 훈계 처분에 그쳤다.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징계시효(당시 2년)가 넉 달이 지났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2011년 아쿠아월드 사업에 대해 집중감사를 했지만, 공무원들의 취업 청탁 사실은 밝혀내지 못했다. 자체 감사에서 들키지않고 넘어간 일을 검찰에 들켰으나 징계시효 덕분에 ‘들켜도 그만’이 된 셈이다.

공무원 징계시효 규정이 처음 만들어진것은 1973년 박정희 정부 때다. 애초엔 2년이었다. 1991년 법안 개정 때 금품 관련 비위에 대한 징계시효(3년)를 따로 뒀다. 2010년 3월 금품 비위 징계시효를 5년으로 늘렸고,2012년 2월 일반 비위 징계시효를 1년 더 늘려, 현행 3년(일반 비위)-5년(금품 비위) 체제가 갖춰졌다. 징계시효가 짧다는 지적이제기될 때마다 찔끔찔끔 늘려온 것이다.

최근 국회에는 공무원 징계시효를 대폭 늘리거나 아예 없애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됐다. 감사원 등의 감사 주기를 고려하면 현행 공무원 징계시효가 너무 짧다는 것이다.한겨레 김봉규

최근 국회에는 공무원 징계시효를 대폭 늘리거나 아예 없애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됐다. 감사원 등의 감사 주기를 고려하면 현행 공무원 징계시효가 너무 짧다는 것이다.한겨레 김봉규

이런 탓에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감사원은 지난 5월23일 ‘주요기관 회계취약분야비리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허위 지출결의서를 작성해 시장 업무추진비 2억여원을 부당하게 집행한 대전시 공무원 2명이 적발됐다.그런데 전임 박성효 시장의 업무추진비 관리를 담당했던 직원은 징계시효가 지나 징계 대상에서 빠지고, 현임 염홍철 시장의 업무추진비 관리를 맡은 직원은 징계 대상이 됐다. 감사원이 지난 4월18일 발표한 ‘지방교육행정 운영실태 감사’ 결과, 경기도교육청 공무원 2명이 근무평점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총무과 공무원 ㄱ씨는 2011년 교육행정직인 배우자의 근무평점을 조작했다. 또 다른 총무과 공무원 ㄴ씨는 2010년 직원 14명의 근무평점을 조작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근무평가표의 부교육감 결재를 위조했다. ㄱ씨는징계 대상이 됐으나, ㄴ씨는 징계시효가 지난탓에 징계를 받지 않게 됐다. 감사원이 통보한 사실이 인사 자료로 활용되는 정도다.

 

전임 직원은 빠지고 후임 직원은 처벌받고

예산·공금을 빼돌리거나 뇌물을 받는 등금품 비위에 적용되는 징계부가금에도 징계와 똑같은 시효가 적용된다. 관련 금액의 5배 내에서 돈을 토해내도록 한 규정이다. 공무원 ㄷ씨는 단양교육지원청에서 교직원 보수 지출 업무를 담당하면서 2006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 31차례에 걸쳐 공금을 빼돌렸다. 횡령액이 1억3천만원에 달했다. ㄷ씨는 감사원이 지난 3월 수사를 요청하자 시효가 지나지 않은 9300여만원을 반환했다. 그러나 시효가 완성된 2006년 12월~2008년 2월에 횡령한 3900여만원은 반환하지 않았다.

공무원이 아닌 공기업도 이 법을 차용한 내부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 부품 납품 비리 사건으로 적발된 원전 직원 가운데 징계시효 경과를 이유로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는 사례도 발생했다. 지난 1월25일 광주지검은 부품 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원전 직원 11명을 적발해 4명을 기소·수배했다. 뇌물 액수가 수십만~수백만원 수준인 7명은 한수원에 통보했다. 한수원은 이들과 자체 감사에서 적발된 1명 등 8명에 대해 인사위원회를 열었으나, 5명은 징계시효 내규 덕분에 징계를 면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에 흉물로 방치돼 있는 콘도미니엄의 인허가 과정에서 각종 기준을 편법으로 완화해준 공무원들은 중징계 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징계시효가 면죄부가 됐다.한겨레 김경욱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에 흉물로 방치돼 있는 콘도미니엄의 인허가 과정에서 각종 기준을 편법으로 완화해준 공무원들은 중징계 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징계시효가 면죄부가 됐다.한겨레 김경욱

최근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된 국가·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은 공무원 징계시효를 대폭 늘리거나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21일 징계시효를 현행3년(일반 비위)-5년(금품 비위)에서 7년-10년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변 의원은 “뇌물죄의 경우 수뢰액에 따라 공소시효가 10~15년인 것과 비교해보면 현행 징계시효는 지나치게 짧다”고 말했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은 6월12일 아예 징계시효 규정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조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처에 해외 사례 조사를 의뢰한 결과, 미국·영국·일본·프랑스·독일·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는 공무원 징계시효 관련 규정을 찾을 수 없었다. 현행 규정은 법적 안정성의 확보라는 순기능보다는 공무원의 비위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기능하는 측면이 크다. 적발 시점과 상관없이 언제든 징계할 수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빛둥둥섬 방지법’으로 불리는 지방공무원법 개정안도 제출돼 있다. 단체장의 공약사업이나 시책사업의 경우 임기 중에 관련공무원의 위법행위가 있더라도 임기 뒤 벌어지는 감사에서는 시효가 만료되기 십상이니 임기 동안 시효를 중지시키자는 내용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공약인 세빛둥둥섬 사업은 지난해 7월12일 서울시 특별감사에서 ‘총체적 부실’로 규정됐다. 서울시가 위법행위를 했다고 밝힌 공무원은 15명이었지만, 이 가운데 9명은 중징계 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시효 경과로 훈계 조처를 받았다.

 

“개인 비리와 구분하는 것도 방법”

징계시효의 중지나 폐지가 과중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공무원법에는 단체장에 대한 징계 규정이 없는데다, 공무원은 명백한 위법이나 불법 명령이 아닌 경우 단체장의 직무 명령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공무원 징계시효를 완전히 폐지한다면 공무원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도록 시효를 늘리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조영선 변호사는 “국민을 상대로 위법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시효를 없애고 개인 비리의 경우 시효를 충분히 두는 등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징계시효를 세분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떤 방안이 ‘정답’인지 규정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공무원 비리가 발생하면 할수록 징계시효를 늘리거나 없애자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란 점이다.

이지은 기자
국방부 징계부가금제 아예 없어
같은 공무원 다른 시효
군인과 국가정보원 직원은 ‘특별한’ 공무원이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공무원 징계시효가 다른 공무원에 견줘 짧기 때문이다. 일반 공무원이나 검사·법관의 일반 비위에 대한 징계시효는 3년이지만, 군인과 군무원, 국정원 직원은 2년이다. 왜 이들을 ‘차별’하는 것일까?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5월28일 군인·군무원 등의 징계시효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들에 대한 징계시효가 국가·지방공무원, 소방·경찰·교육공무원 등보다 1년 짧아 징계 회피 가능성이 크다며 관련 법 개정을 권고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직에 따라 규정하는 법이 각각 달라서 생긴 문제로보인다. 2012년 3월 일반 비위 징계시효를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내용으로 국가·지방공무원법이 개정된 뒤 다른 부처들은 관련 법 규정을 그에 맞춰 손질했지만, 국방부 등은 그대로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군인·군무원, 국가정보원 직원의 경우 금품 비위와 관련해 수수액의 5배 범위 안에서 징계부가금을 부과하도록 한 규정이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규정은 징계 처분만으로는 공직사회의 금품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이유로 2010년 신설된 것이다. 권익위는 2011년 9월에도 국방부에 징계부가금 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했으나, 아직까지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지난 5월 재권고했다고 밝혔다. 권익위가 재권고에 앞서 군인·군무원의 금품 및 향응 수수 비위자 실태를 조사해보니 2009년 51명, 2010년 60명, 2011년 59명, 2012년 76명 등 금품 관련 비위가 증가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효가 없으니 이들 아무도 토해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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